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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AL TECHNE ③

초기술복제시대의 저작권 전쟁: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글 안진국

※본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게재되었습니다.

〈찢어라! 리믹스 선언(Rip! A Remix Manifesto)〉(2008) 영상 스틸 이미지, 이미지 제공: 안진국 미술비평가

 

 

“속지 않는 자들이 헤맨다(Les non-Dupes Errent).” 라캉(Jacques Lacan)이 나에게 준 가장 중요한 사유의 유산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이 문장을 꼽을 것이다. 1973년에서 1974년 사이에 진행된 『세미나21(Séminaire XXI)』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우리에게 속지 말라고 촉구한다. 라캉의 정신분석에서 ‘아버지의 이름(Nom-du-Père)’으로 일컬어지는 상징계 권력은 인간을 고정관념의 세계에 굴복시키고, 그 질서에 동의하게 만든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에 ‘속지 않는 자들’은 헤맬 수밖에 없다. 헤매지 않는다는 것은 고정관념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며,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삼고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에 불과하다.

‘헤맴’은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반문(反問)이다. 다시 말해, 타인의 욕망을 재현하지 않으며, 자신이 지닌 욕망의 출처를 거듭 묻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늘 헤매길 시도한다. 하지만 언제나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그 입장이 맞는지 거듭 반문하며 헤맨다. 그런데 입장조차 갖지 못하고 헤매는 영역이 있다. 바로 ‘저작권’ 영역이다. 인터넷 검색과 컴퓨터 자판 몇 번만 누르면 복제가 가능한 ‘초(超)기술복제시대’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저작권 지형은 늘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한쪽에는 개인이 오랜 시간 공들여 창작해 낸 작업이나 아이디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하늘 아래 더는 새로운 것이 없고, 어떠한 창작도 다른 것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결합하여 다른 것을 창작할 수 있도록 작업이나 아이디어의 독점권이 없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 바로 ‘copyright(저작권)’과 ‘copyleft(공개 저작권, 독점적인 의미의 저작권에 반대되는 개념)’라는 서로 다른 ‘아버지의 이름’. 이 사이에서 나는 속지 않기 위해 헤맨다. 하지만 나를 무력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이 지형에는 단순히 순수한 창작자와 몽상적 표절자(utopian plagiarist)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욕망의 세력이 들러붙어 있다.

 

좋은 놈: 창조적 예술가와 몽상적 표절자

저작권 지형에서 가장 순수한 자들은 창조적 예술가와 몽상적 표절자이다. 그들은 모두 좋은 창작물을 얻기 위해 뛰고 있다. 하지만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창조적 예술가는 칸트가 “모든 순수 예술(미적 기예)은 천재의 산물”(『판단력 비판』)이라 주장을 하며 탄생시킨 천재 ‘저자’라는 낭만주의적 형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반면, 몽상적 표절자는 낭만주의적 형상인 ‘저자’를 죽이고(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독자의 탄생’을 옹호한다. 여기에는 ‘사용자-생산자(user-producer)’라는 대중 예술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롤랑 바르트가 선언한 ‘저자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이며, ‘신적 권위의 죽음’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축이며, 혼성모방과 서브컬처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길이었다. 여기에 더해 복제가 너무 손쉬워진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콜라주(collage), 레디메이드(readymade),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카피 앤 페이스트(copy and paste), 패스티시(pastiche), 샘플링(sampling), 컷-업(cut-ups), 매시업(mashup), 리믹스(remix) 등 복제와 재조합에 관련된 예술적 명칭이 더욱 힘을 얻거나 다양한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 명칭들은 (각자가 주요하게 여기는 작동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호환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뿌리는 복제에 있다. 예술 영역에서 이렇게 복제의 활용이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난 것은 초기술복제시대의 기술력과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에 비춰본다면 몽상적 표절자의 작업방식이 시대에 부흥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 발전은 몽상적 표절자에게 더욱 힘을 실어준다. 브렛 게일러(Brett Gaylor)는 자신이 감독한 다큐멘터리 〈찢어라! 리믹스 선언(Rip! A Remix Manifesto)〉(200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터넷은 나라는 섬과 전 세계를 연결시켜주고, 나의 생각과 수백만 명의 다른 생각을 소통시켜준다. 게다가 전 세계의 문화를 다운로드하고 그것을 다른 무언가로 변형시킬 수 있는, 미디어 독해능력을 갖춘 세대가 출현했다. (…) 재미있는 것들, 정치적인 것들, 새로운 것들이 모두 인터넷에 다시 업로드된다. 이제는 소비자가 미래의 대중 예술을 만드는 창조자이기에, 창조적 과정이 그 산물보다 더 중요해졌다.” 사이버펑크 SF소설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복제와 재조합의 실천인 “리믹스는 디지털 자체의 본질”이고, “우리가 직면한 두 세계의 전환기를 특징짓는 중심점”이라고 말한다. 몽상적 표절자는 복제와 재조합 실천들이 디지털-인터넷 시대에 맞는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찬양한다. 이 부류에서 드러나는 집단은 혼성모방적 작업을 선보이는 예술가나 문화 단체, 디제이(DJ)와 브이제이(VJ) 등이다. 하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같은 다국적 기업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반대편에는 창조적 예술가가 존재한다. 이들은 독창적인 창작 작업을 전유하여 재사용하는 것은 게으른 일이고, 싸구려 짓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행위에는 어떠한 재능이나 천재성도 필요하지 않다고 평한다. (후략)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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