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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로만 베작의 사회주의 모더니즘과 평양

글 천수림

《로만 베작: 시대의 고고학》 | 8.17~11.20 | 고은사진미술관

로만 베작, 〈평양-개선문(Pyongyang-Arch of Triumph)〉, 잉크젯 프린트, 100×123.5cm, 2012 ⓒRoman Bezjak

슬로베니아 출신의 사진작가 로만 베작(Roman Bezjak)은 2012년 북한의 모습을 담은 〈평양〉 시리즈 이후 다시 평양에 가지 못했다. 번번이 비자 신청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그에게 평양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도 평양은 의미 있는 장소이다. 때때로 평양은 실제로 존재하는 동시에 일종의 만들어진 환경으로도 인식되어 왔다. 인공적이고, 가상적인 이미지로서의 공간은 어떻게 실제 장소로서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까.

고은사진미술관은 세 번째 해외교류전으로 마련된 《로만 베작 : 시대의 고고학》에서 로만 베작의 주요 작업들 중 〈사회주의 모더니즘〉과 〈평양〉 시리즈를 아시아 최초로 선보였다. 로만 베작은 오랫동안 〈사회주의 모더니즘〉 시리즈를 통해 동유럽, 북마케도니아와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까지 장대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는 사회주의 모더니즘의 가장 탁월한 모델을 보여주는 도시들을 골랐으며, 이는 그루지아, 몰도바, 그단스크, 콘스탄차, 슬로바키아, 베오그라드, 사라예보, 민스크, 스코페, 티라나, 브라티슬라바, 키시나우, 라트비아, 모스크바, 하사키우 그리고 평양으로 이어졌다. 마치 가상과 실재가 섞여 있는 듯한 이미지로 재생산되던 평양은 로만 베작의 렌즈를 통해 동시대의 살아있는 ‘장소’로 다가왔다. 

로만 베작이 사회주의 도시계획과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그가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란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동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곳곳이 파괴된 이후 일종의 ‘백지 상태(Tabula rasa)’가 되어버렸지만, 건축가들에게는 전쟁 이후 파괴된 도시를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라이카 매거진 『LFI』와의 인터뷰에서 로만 베작은 “이 콘셉트는 새로우면서도 당시로서는 많은 것을 약속하는 사회모델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유토피아적인 잠재력이 미적 형상에서뿐만 아니라 의도된 사회모델에서도 매력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반전되는 그 절묘한 순간은 제게 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전후 사회주의 모더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FAZ(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매거진의 990년대 동유럽 르포에서 시작되었다. 국가 주도로 시작된 기능적인 건축물, 공공건축물, 행정건축물, 산업화된 디자인의 조립식 패턴에서 벗어난 건축물, 공공주택 단지와 공원, 공공청사, 공공미술은 그가 포착한 피사체들이다.

로만 베작 외에도 사회주의 모더니즘을 탐색한 작가들은 동유럽의 모더니즘을 하나의 구조로 인식하고 건축물을 그래픽으로 묘사하거나, 웅장하거나 기묘한 건축물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반면 로만 베작은 건축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건축을 생산한 이데올로기와 욕망의 제도에 관한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는 각 국가들이 점점 편협해지고 민족주의가 강화되며 사회가 계층에 따라 분리되는 시기의 도시를 기록해왔다. 단순하게 건축물의 형태나 독특함 혹은 완성된 하나의 건축물만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동유럽의 모더니즘을 하나의 건축적 어울림과 전체의 조화로서 읽어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대형카메라 사용, 실제와 유사한 비율과 비슷한 원근감, 유사한 빛, 사진을 자르는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다만 〈평양〉 작업은 라이카로 촬영했으며, 특히 연작에 통일된 사진적 미학을 부여하기 위해 같은 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살짝 빛이 바랜 엽서같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사진을 밝게 인화했기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건축물들에 거리를 두고 촬영했음에도 연민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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