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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공수래 곡수거

글 한혜수

《구재회·최주원: 능숙한 허우적거림》 | 8.22~9.1 | 갤러리175

《능숙한 허우적거림》 전시 전경, 사진: 조호

갤러리에서 시냇물 소리가 났다.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나는 전시에 기시감이 들었는데, 때마침 갤러리175 근처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된 구동희의 《딜리버리》와 시기를 같이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능숙한 허우적거림》에서는 더 본격적으로 전시장 한가운데를, 사람의 허리 정도까지 올라오는 높이의 수로(水路)가 차지하고 있다. 구재회는 강가, 최주원은 회전초밥 레일로 상정한 이 수로 위에는 말 그대로 작품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출입문 근처의 〈메뉴판〉 드로잉은 레일 위 최주원이 만든 조각들의 캡션이 되어준다. 관람객들은 허공의 레이저포인터를 눈으로 좇는 고양이마냥 도랑에 흘러가는 나무 초코송이, 칸쵸, 메추리알, 몽쉘 따위의 것들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전시에는 이중의 풍경이 겹쳐 놓여 있다. 하나는 최주원의 회전초밥식 식당(쉽게 회전초밥집을 떠올리게 되는 데 비해 정작 초밥이 메뉴에 없어서 회전초밥‘식’이라고 했다.)이고, 구재회의 경우는 강물이 흐르고 수목이 자라는 자연의 풍경이다. 〈메뉴판〉, 돌아가는 먹거리들(〈버섯〉, 〈당고〉, 〈작은 만화고기〉, 〈메추리알 장조림〉, 〈칸쵸〉, 〈떡꼬치〉 등), 〈먹보의 얼굴〉과 〈먹보들〉, 〈술 취한 친구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바 의자(〈앉으니 편하다〉), 문발(〈이랏샤이〉) 등은 식당의 풍경을 구성한다. 한편 구재회가 만든 〈대머리 선인장〉이나 〈9월의 벚꽃 나무〉, 폭포, 동굴 등은 자연의 풍경을 조성한다. 물론 실재 공간에 가상의 풍경을 전사하려는 비평적 욕구를 비집고 들어오는 틈들이 있다. 회전초밥식 레일은 기성 초밥집의 기계식 레일이 아닌지라 영 허술해 보이고(더러는 누수되는 부분 아래 물병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전시 후반으로 갈수록 물받이의 갯수는 줄어들다가, 마침내 마지막 날 즈음에는 아예 사라졌다.), 자연물의 이름을 한 조각들은 거대 픽셀화된 것처럼 단순한 형태다. 〈깊고 깊은 동굴〉은 얇디얇다. 폭포는 파이프에 턱걸이하듯이 내걸려 있어서(〈걸어 놓는 폭포〉) 실은 폭포가 아니라 그 본령이 조각이라는 사실을 계속 주지시킨다.

두 작가는 “조각의 폼(form, 형태)에 따라 놓는 방식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놓는 방식에 따라 조각의 폼을 결정했다.” 이는 조각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을 요하는 것이다. 작품을 좌대 위에 올려우러러보게 하는 전통적인 조각 개념은 거부되었고, 대신 수공적인 수로와 레디메이드 오브제(빨래 건조대, 파이프 등)가 좌대의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그런데 이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은 동시에 설치 작업의 일부분으로도 보인다. 전시장 전체는 일종의 ‘설치적인’ 풍경으로 연출되는 동시에, 일체감 있는 설치 환경으로 보이는 것은 빗겨 간다. 최소한 수로 안쪽과 수로를 떠다니는 작업들은 한덩어리로 인식되었지만 다른 작품들은 각각의 고유 공간들을 점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작가들은 수로를 떠다니는 작업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다. 헌데 수로에는 이름이 없고, 빨래 건조대는 캡션의 재료 항목에 기재되지 않았으니 이는 전시환경을 구성하는 좌대, 즉 지지체의 역할만 부여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긴 할 터이다. 단, 존재감이 정말 큰 좌대들인 것 같다. 《능숙한 허우적거림》은 외려 좌대를 과대표되도록 함으로써 조각 작품의 존재론을 의문에 부치는, 유쾌한 본말전도를 기도한다.

그나저나 전시는 결국 ‘먹보들’로 수렴되었다. 작품 철수 전날 열린 클로징 이벤트에서는 곡수거(曲水渠)4 앞에 둘러앉아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려는 듯 작가들과 관람객들이 술과 안주를 물길 위에 띄워 먹었다. 〈먹보들〉 앞에 쌓여 있던 의문의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그릇들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원래는 술잔이 내 앞에 올 때까지 시 한수를 읊어야 했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시 같은 걸 즉석에서 지어낼 정신은 없으니 부지런히 주워 먹었다. 공수래(空手來) 곡수거, 빈손으로 와서 도랑에 흘러오는 주전부리들로 헛배만 채우고 나왔으니 〈먹보의 얼굴〉은 사실 내 얼굴이었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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