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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따로 또 같이 떠오르는 자카르타의 미술

글 권태현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무빙 랜드스케이프(Moving Landscape〉(왼쪽), 〈소외돼서 행복해(Happy to be Alienated)〉(오른쪽) 설치 전경,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 2019》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다채로운 미술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취재의 목적지였던 인도네시아 최대의 아트페어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는 다시 태어났다고 할 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아시아의 미술인들이 모여들 장(場)을 열어냈다. 떠오르는 아시아 미술 시장의 분위기와 함께 한 번의 취재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인도네시아의 미술세계를 조금이나마 지면에 옮겨 본다.

11회를 맞이한 아트페어이지만, 본지를 포함한 전 세계 외신들의 큰 관심을 모은 이번 《아트 자카르타 2019》(8.30~9.1)는 한마디로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페어를 총괄하는 디렉터부터 열리는 장소, 참여하는 갤러리, 심지어 디자인까지 모두 새롭게 바뀌었다. 신임 페어 디렉터 탐 탄디오(Tom Tandio)와 아티스틱 디렉터 에닌 수프리얀토(Enin Supriyanto)는 인도네시아 미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뻗어 나가는 페어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러한 작업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산술적으로도 페어에 참가한 70개 갤러리 중 40개 갤러리가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 갤러리로 구성되었고, 페어를 찾는 컬렉터와 관객들의 변화도 감지되었다. 취재를 통해 취합한 정보에 따르면 탐 디렉터의 영향으로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힌 갤러리들이 여러 곳 있기도 했다.

이전보다 국제적으로 변모했지만 《아트 자카르타》는 서울의 《KIAF》나 가장 큰 규모의 페어인 《아트 바젤》 같은 행사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지역적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서구의 대형 갤러리들이 주인공이 되는 아트페어들과 달리, 자카르타의 페어는 인도네시아 로컬 미술과 아시아의 동시대 미술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객들을 맞이하는 것도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대형 설치작업이었다. 반둥 출신인 알베르트 요나탄(Albert Yonathan)과 한국에서도 아라리오 갤러리를 통해 개인전을 선보인 바 있는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작업이 입구의 넓은 공간에 펼쳐졌다. 두 작가는 특히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인도네시아 파빌리온 전시에서도 함께 참여했던 만큼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다른 대형 페어에서는 각 갤러리가 대규모 작업들을 선보이며 각축하는 전시장이 따로 마련되기도 하지만, 《아트 자카르타》는 ‘아트 자카르타 스팟(Art Jakarta Spot)’이라는 기획으로 전시장의 빈 공간들을 활용해 주어진 규모에서 적절히 대형 작업들을 선보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작가들 외에도 한국의 더 컬럼스 갤러리가 기획한 스팟에는 유지인 작가의 작업들이 전시되었고, 오프 사이트(Off-Site)라는 외부 기관과 협업으로 만들어진 부스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 전시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되었던 황포치(Huang Po-Chih)의 〈생산 라인(Production Line)〉을 만날 수 있었다. 미술시장인 아트페어의 한복판에 놓인 자본과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작업은 모순적이지만, 공간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긴장을 드러내기에 도리어 강한 존재감을 내뿜기도 했다.

다채로운 부스들
갤러리 부스에서도 세계적인 명성의 큰 이름들을 찾기 어려워 오히려 신선했다. 싱가포르의 아트 포터스(Art Poters)에서 선보인 나우팔 압샤르(Naufal Abshar)의 작업과 VIP라운지를 통해 전시된 뇨만 마스리아디(Nyoman Masriadi)의 인기를 통해서는 이곳 미술시장의 트렌드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취재 중에 복수의 관계자들이 동남아 미술시장에서는 강한 색채의 구상 작업이 강세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페어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파악되는 흐름은 그렇게 한 마디로 수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향은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도쿄의 슈고아츠(ShugoArts)는 최근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선보였던 리킷(Lee Kit)의 프로젝션과 설치로 부스를 채워 눈에 띄었다. 조용히 정제된 공간에서 감상했던 리킷의 작업을 북새통 같은 페어 현장에서 접하니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자카르타 동시대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로 프로젝트(Roh Projects)와 같은 갤러리들도 회화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작업들을 선보이며 동남아시아 미술의 최전선을 보여주었다. 특히 로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Roh Projects Projects)’의 경우 따로 부스를 마련하여 인도네시아의 루키 룩만(Luqi Lukman)과 태국의 아팃 손송크람(Atit Sornsongkram)의 2인전을 펼쳤다. 유리 작업으로 물질과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루키 룩만과 거울을 주제로 한 사진 작업을 하는 아팃 손송크람의 조응, 그리고 관객의 움직임까지 고려
한 디스플레이는 아트페어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획력이 돋보이는공간을 열어내었다.

한국에서도 아라리오갤러리, 아뜰리에 아키,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예화랑, 그리고 더 컬럼스 갤러리가 참가했다. 예화랑 부스에서는 이환권 작가의 조각이 외국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아뜰리에 아키에선 강예신 작가의 인기가 눈에 띌 정도였다. 더 컬럼스는 이세현 작가와 전병삼 작가를 내세웠고, 선 컨템포러리에서는 정영주 작가의 그림이 외국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국내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미술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 온 아라리오갤러리는 한국 작가인 이석주, 이동욱, 이진주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만들어온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으로 부스를 꾸렸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제랄딘 하비에르(Geraldine Javier)의 왁스 작업도 볼 수 있었고, 늑대와 샹들리에,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가 어렴풋이 흘러나오는 노래와 함께 어우러지는 좀팻 쿠스위다난토(Jompet Kuswidananto)의 설치 작업은 식민주의와 탈식민 같은 정치적인 주제를 다양한 감각으로 번져나가는 방식으로 풀어낸 탁월한 작업이었다.

페어 기간 내내 컬렉터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기도 했는데, 복수의 취재원들은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컬렉터들의 특징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마음껏 투자한다는 점을 꼽았다. 서구의 컬렉터들이나 한국의 컬렉터들은 세계적인 경향을 파악하고 가장 뛰어난 작업을 고르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면, 이 지역의 컬렉터들은 세계적인 주류 경향에서 벗어난 미술에도 큰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컬렉터들의 성향은 《아트 자카르타》의 다채로움과도 연결되고, 더 큰 차원에서는 로컬 미술의 자양분이 되어 지역의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고똥로용
‘고똥로용(gotong-royong)’은 연대와 협력, 상부상조 등을 뜻하는 인도네시아 고유의 개념으로 인도네시아 문화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오랜 세월을 지나며 국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전유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넓게는 특유의 공동체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경향을 강조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근대화의 물결 앞에서 농촌이 붕괴하던 시기, 농업을 버리고 도시화에 굴복하기보다는 농촌의 일거리들은 아주 정교화시켜 농촌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기어츠의 말을 빌리면 ‘빈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이런 문화의 영향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여행자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화장실이다. 민망하게도 인도네시아는 화장실마다 상주하는 담당 직원이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렇게 노동을 세밀하게 분화시키는 일자리 창출 방식을 인도네시아의 오랜 문화적 전통과 연결하기도 한다.

미술의 맥락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미적 형식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인도네시아의 세계적인 작가 에코 누그로호를 비롯하여 동시대 인도네시아 작가들은 섬유와 자수를 매체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일종의 일감 나누기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작업 과정 자체를 지역의 바느질 노동자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 문화는 다음 《카셀 도큐멘타》의 감독으로 선정되며 전 세계 동시대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루앙루파(ruangrupa)’ 같은 인도네시아 콜렉티브 운동과 연결되기도 한다. 《아트 자카르타》의 기획자들도 이러한 정신이 인도네시아 미술계 전체의 저력이라고 역설했다. 연대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미술계가 강화되고, 그것은 나아가 지역 커뮤니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갤러리와 이곳의 관객들, 그리고 컬렉터들이 지역 미술과 상부상조하며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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