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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병찬 개인전<자연사 박물관>

글 정윤희

문래동의 한 철강소를 점령한 괴물 생명체들

 

날카로운 기계음과 철가루 먼지를 신나게 내며 바쁘게 돌아가던 공장들도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곳. 마치 한물갔거나 혹은 퇴색되어 버려 문을 닫아버린 세계인양 단숨에 탈바꿈해버리는 그곳이 문래동 철강소이다. 문래동 철강소가 집합되어 있는 거리 한 중간, 잠시 휴업을 하고 있는 한 공간에 위치한 전시장을 찾았을 때도 이 지역에는 이렇듯 음산한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철재문이나 유리문 대신 찢어진 검정 봉지로 대충 마감되어 있었던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펼쳐진다.

이병찬, 〈Urban Creatures-Natural History Museum〉, 가변크기 설치 전경, 2014

SF 영화에서 보았음직한 광경이었다. 괴상하고 거대한 생명체들이 흐느적거리며 어두침침한 공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버림받고 지하 하수구 동굴로 숨어들어가, 온갖 더러운 오물을 먹으며 끈질긴 목숨을 연명하고 살아가던 생물체가, 욕망에 휩싸인 한 이기적인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위험한 화학 물질을 피부에 접하고 말아 거대하고 괴상하게 변종되어 버린 형태랄까. 형형색색의 비닐 풍선들이 곤충의 다리, 더듬이, 날개, 비늘처럼 마구 붙여지고 더해져서 기형적으로 확장되었다. 이 기괴한 풍선 괴물은 품속에 진주알 같은 조명을 품고 있었고,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을 타고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정말 살아있는 외계 생명체와 같은 인상을 준다. 작품들은 철강소의 계단, 인부들의 휴게실, 휴게실에 걸려있는 빨랫줄과 2층 가장 구석진 공간에까지 기가 막히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직까진 이 동네 철강소가 대부분 활발히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요즘 같은 첨단 사회에서는 한물간 업종으로 치부되기 일쑤이며, 주변에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면서부터는 주민들로부터 흉물 취급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전시장 내에는 한물 간 과거와 SF 영화 속 미래가 공존하며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따지고 보면 격동의 소용돌이와 거친 삶의 현장 속에서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단상도 이와 같지 않을까. 빠르게 변화하고 거칠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강인한 정신력과 생존능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잃어버린 정체성을 필요 이상의 소비를 통해 보상 받는다. 우리는 겉치장과 허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인가 되는 것 마냥, 위협적인 존재인 것 마냥, 혹은 쿨하고 세련된 도시인인 것 마냥 행세하지만 이들 작품들의 소재가 속 빈 비닐 풍선인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도 사실 텅 비어 있고, 작품 속 비닐 풍선들이 얽히고 설켜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냉혹하고 잔인한 소외와 슈퍼스타에게 쏟아지는 찬사 사이를 롤러코스터로 오고가며 위험천만한 일상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와 같은 현대인들의 모습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에서 줄곧 보아왔었고, 그 시작점에는 모던 사회와 대중사회의 탄생이 자리 잡고 있다. 비록 서구 사회와 실정이 다른 우리 사회에서 과거 이 철강소가 전투적인 직업의 삶과 세련된 도시의 삶을 모두 영위했던 모던 보이들의 터전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전시는 찰리 채플린 영화 속의 공장건물, 흑백 영상에 등장하는 탄광촌의 이미지, 팝아트, SF 영화 속의 괴물 생명체 등 다양한 이미지와 개념들과 공명하면서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려도 좋을 만한, 일종의 표징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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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IAL

  • ISSUE & PEOPLE

  • SPECIAL FEATURE 사진, 경계 위에 서다

    • 사진작가 6인의 작품을 만나다  편집팀
    • 시대는 사진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박이현
    • 도시기록자, 김용관&노경  이지영
    • 목적이 이끄는 사진, 천경우&김형식  박이현
    • 세상의 털을 찍다, 노순택&정택용  백지홍
  • THEME SPECIAL

    • 탈사진 시대의 사진 친화 유전자  반이정
  • 원로에게 길을 묻다

    • 장두건·사일의 화가, 봄을 완성하다  박정원
  • PEOPLE

    • Artist 1 백성혜·빛과 선이 빚어낸 우주적 울림의 세계  이미애
    • Artist 2 김용남·일상에 대한 서정적 관찰과 삶에 대한 관조  김상철
    • People 최재영·그림에 빠지다  백지홍
  • IMAGE & EASSAY

  • WORLD ART

    • 중국·펑정지에와 펑정취엔의 예술적 소비와 실험  강동군
    • 일본·포스터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양승연
  • MONTHLY FOCUS

    • 난제: 세계를 관조하면서 세계 속에 거주하기가 가능한가?  <2014 부산비엔날레>한행길
  • ART SPACE

    • 첫돌을 맞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이지영
  • REVIEW

  • ARTIST ESSAY

    • 홍용선의 관수루 일기  홍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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