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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김복동 개인전: SALVATION

글 박정원

빛이 현존하는 구원 회화

《김복동 개인전: SALVATION》/2015.10.1~10.8/금보성아트센터(서울)//10.14~10.27/갤러리 리채(광주)

 

 

 

김복동 작가의 그림에는 조르쥬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와 카라바조(Caravaggio)가 살아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 두 대가들이 의도하는 빛의 효과와 그 개념에 주목한다. 특히 촛불처럼 어둠이 빛 속에 스며드는 조르쥬 드 라 투르의 작품과 어둠속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빛이 강렬함을 선사하는 카라바조의 그림은 빛에 의한 고도의 연출력으로 인해 성경의 극적인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반면,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루이스에 대한 일대기를 그린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를 본다면 김복동 작가가 의도하는 빛의 개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받을 고통은 지금 누리는 행복의 일부이다”라는 영화 속 대사와 섀도우랜드라는 제목이 의미하듯이 그리스드교에서 세상은 천국에 도달하기 전의 여행지이며, 사람들의 삶 역시 어둠에 가려 빛의 존재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그림자 상태라는 개념이다. ‘빛’은 세상에 없는 근원적인 기쁨과 선함이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김복동 작가의 빛과 어둠을 이해하는 기준은 철저하게 그리스도교 사상에 입각한 신앙이 기초가 된다.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의미하는 십자가가 현재까지 그리스도교의 표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김복동 작가가 연출한 화면에는 16세기 카라바조(이탈리아)와 17세기 조르주 드 라 투르(프랑스) 등 바로크 시대의 작가들이 이해하는 빛과 작가 자신이 이해하는 빛의 의미가 동일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시대를 꿰뚫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의 캔버스 화면에 거장의 작품 한 점을 모사하고, 그 옆에 분할된 면에 한국의 현대인을 그려 넣는다. 그리고 이 현대인들이 빛에 동참하는 태도는 무엇을 응시하거나 촛불을 들고 있거나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복동, 〈Salvation 2014-6〉, 캔버스에 유채, 나무, 193.7x190.9cm

 

 

이렇게 그의 작품 안에서 빛이 과거와 현재가 하나된 시공간에 현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된 대형 캔버스일 정도로 작가의 밀도 높은 필력에 기인한다. ‘Salvation’, 즉 ‘구원’은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작품명이다. 작품 〈Salvation 2014-6〉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아내에게 비웃음 당하는 욥〉(1593)이란 작품을 재현했다.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책임감을 내려놓으라는 강압적인 아내의 말에 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다할 것을 말하는 장면이다. 그 오른편에는 군복무 중 폭발물 사고로 한쪽 눈과 한족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복동 작가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선배 화가의 모습이 대비된다. 왼편에는 각각 위를 향해 보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 나무판이 보이는데, 성경의 마태복음 27장 46절에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을 당시 고통에 겨워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하고 마지막 절규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다른 작품 〈Salvation 2014-10〉은 카라바조의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1600~1601)을 그렸다. 베드로는 열 두 제자 중에서 고난을 당하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며 부족한 인간의 모습을 가졌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죽음을 통해 실현한 베드로의 모습을 보였다. 이 베드로 성인을 애도하듯 촛불을 들고 서있는 여인의 모습은 카라바조의 그림과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왼쪽 편에 캔버스 테두리 부분에 두껍게 원목을 대고 작은 선반을 여러 개 만들어 돌멩이들을 올려놓음으로써 평면과 입체가 혼재된 탈회화적인 시도를 주목할 만하다. 수직으로 설치된 12개의 돌멩이들은 열 두 제자들의 고유함과 그리스도 전례력을 안고 있는 열두 달을 은유적으로 건드리고 있으며 태초부터 현재까지 그리스도교에 대한 기원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스도의 현존을 믿는 신앙심의 실체를 보는 듯하다.

 

김복동, 〈Salvation 2014-10〉, 캔버스에 유채, 나무와 돌, 147.5x248.3cm

 

 

이렇듯 김복동 작가의 작품에 담고 있는 구원이란 의미는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이지만 스스로가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회화로서 보여주고 있다. 김복동 작가가 5~6세기를 초월하여 조르쥬 드 라 투르와 카라바조를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캔버스라는 시공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는 이들 역시 작가가 의도한 형이상학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창구에 서게 된다. 그 길목에는 부활과 맞닿아 있는 고통과 환희가 존재한다. 이 역설적인 진실을 신앙인이자 화가의 숱한 붓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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