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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소산 박대성-붓끝 아래의 남산》·《박대성 기증작품전-불국설경》

글 정승은

경주에 펼쳐진 묵향의 향연

 

 

 

《소산 박대성-붓끝 아래의 남산》·《박대성 기증작품전-불국설경》/8.22~11.29‧8.22~연중 상설/경주솔거미술관 박대성전시관 1~5관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황룡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화가 솔거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온다. 사찰의 금당벽화 속 노송(老松)이 어찌나 사실적인지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 벽에 머리를 찧곤 했다는 것. 지난 8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에 개관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 솔거미술관에도 비슷한 일화가 새로이 쓰여질 듯싶다. 마치 솔거가 되살아난 듯, 전통수묵화의 현대적 계승자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의 대형 수묵화 앞에 서있노라면 화폭 안 풍경 속에 내가 실재하는 듯한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박 화백은 1999년부터 경주 남산 자락에 작업실을 두고 황룡사, 분황사, 불국사, 포석정, 석굴암, 불상, 탑, 소나무, 대나무 등 신라의 숨결이 담긴 문화재와 자연을 화폭에 담고 있다. 스스로를 ‘신라인(新羅人)’이라 자칭하고 작품에도 신라인이라 적을 정도로 경주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경주의 공립미술관 개관을 위해 회화, 글씨, 도자기, 먹과 벼루 등 70년의 화업이 담긴 총 830점의 소장품을 모두 기증했다. 이에 솔거미술관은 개관기념전으로 기증작 전시 〈박대성 기증작품전-불국설경〉을 박대성전시관 2~4관에서 연중 상설로, 최근 작품 15점을 모은 신작 전시 〈소산 박대성-붓끝 아래의 남산〉을 1관과 5관에서 11월 29일까지 선보인다.

 

박대성, 〈불국설경〉, 291.5×1084cm, 1996

 

 

박 화백은 1968년 23세 때부터 8회 연속 국전 수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중앙미술대전에서 1978년 장려상과 1979년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80~90년대에는 겸재 정선,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을 잇는 실경산수의 대가로 평가 받았다. 이후 수묵화를 근간에 두고 구상과 추상, 진중함과 해학,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전통수묵화의 창조적인 계승을 이뤄왔다. 하지만 그의 미술세계는 정규교육이 아닌 독학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다. 1945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5살에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왼쪽 팔마저 잃었지만 강한 의지로 고단한 삶을 개척해 나갔다. 중학교 이후 학업을 중단한 그는 중국 청나라 초기에 편찬한 화보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을 독학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했다. 그의 그림인생은 그야말로 형설지공(螢雪之功)이 아닐 수 없다.

 

  박대성, 〈독도〉,218×825cm,2015

 

 

‘비움의 미학’을 구현하는 건축계의 거장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솔거미술관의 수려한 공간 사이로 박 화백의 정신세계가 물 흐르듯 흘러간다. 눈 내린 불국사의 전경을 담대하게 표현한 대형작품 〈불국설경〉, 두 마리의 소가 힘을 겨루고 있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가로 4m가 넘는 지난 2월 뉴욕 개인전 전시작 〈우공투양도〉, 독도 위를 감싸고 있는 용이 손아귀에 일본 국기를 잡고 있는 형상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은유적으로 꼬집는 가로 8m의 대형 최신작 〈독도〉, 도예 재료인 흙과 아교를 회화재료로 변용해 전통 도자의 매력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글씨를 더해 생동감을 불어넣은 〈고미〉 연작들…….

 

 

 

묵향(墨香)에 취해 발길을 옮기다 보면 대형 수묵화들이 뿜어내는 아우에 휘감겨 관람자의 시선은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결코 화려한 색채나 치장으로 유혹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진중한 필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순수한 먹의 농담, 시선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긴장감 있는 공간구성이 작품의 흡인력을 배가시킨다. 소산 박대성의 인생을 담은 걸작들은 고요했던 필자의 감성을 생동감 넘치는 일렁임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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