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REVIEW

Uncommon Sense: 한경우 전

글 피지혜

눈속임의 이면

《Uncommon Sense: 한경우 전》/10.15~11.27/살롱드에이치

 

시각과 이를 지배하는 관념 사이의 간극에 주목해 온 한경우 작가는 이번 개인전《Uncommom Sense》를 통해 그의 일관된 관심사가 돋보이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들을 얼핏 보면 시각적 착시현상을 경험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관람자의 고정관념이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필자는 한경우의 작품들을 마주할 때마다 연상되는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벨기에 태생의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반역(The Treachery of images)〉 작품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의 문장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평소 우리의 관습화된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르네 마그리트 외에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자주 사용했던 ‘트롱프뢰유(trompe-l’œil)’, 이른바 눈속임이라는 뜻을 지닌 속임수 그림 기법은 이후 옵 아트(Optical art)의 차가운 추상화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트롱프뢰유 기법이 활용된 작업들이나 옵아트 관련 작업들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착각과 한경우가 즐겨 사용하는 인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시각적 착각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미술가들의 시지각의 오류에 대한 관심이 오랜 역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빌려 변모해왔다는 점이다.

한경우, 〈Beginning without End〉,Live video installation, various dimensions,2015

 

미디어아티스트 한경우의 신작들을 통해 관람자의 관념으로 형성되는 시각적 착각의 실체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Senseless Sense〉(2015) 연작은 수평적 화면구도의 당구대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소 낯선 수직적 화면구도의 당구대를 보여준다. 화면 속 당구공은 수직으로 세워진 화면의 영향인 마냥 수직 낙하한다. 당구대를 수평구도로 보아야할지, 수직구도로 보아야할지 누가 정해놓은 기준인 걸까. 〈Pretending walls〉(2015) 연작은 언뜻 보아 모두 같은 공간을 촬영한 사진들을 나란히 벽에 걸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들여다 본 순간, 관람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모두 다른 장소를 촬영한 것이지만, 각각 특정 시점에서 비슷하게 보이는 구도로 촬영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치영상작업인 〈Beginning without End〉(2015)는 관람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작품이다. 앞서 일련의 사진을 통해 순간적인 시각적 착각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유사한 시각적 착각을 유발한다. 실시간 카메라를 통해 3차원의 공간의 모서리가 3대의 화면상에 비춰지는데, 3대의 화면 속 모서리는 모두 그 비율과 형태가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관람자가 작품이 설치된 공간을 유영하듯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모습이 화면마다 다른 크기와 각도로 촬영됨을 인식한 순간, 각각의 화면 속에 촬영되는 모서리가 동일한 3차원의 모서리를 3개의 거리(근거리, 중거리, 원거리)에서 촬영한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세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통지점은 작가는 실재, 있는 그대로만을 작품에 담아낸다는 점이다. 작가는 시각적 착각을 의도하는 장치를 작품에 끼워 넣지 않는다. 만약에 한경우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 착각을 경험했다면, 이는 아마도 관람자의 관습화되고 일반화된 관념에서 기인한 주관적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일 것이다.

전시 서문의 말미에서 작가는 ‘과연 우리가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단순히 인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시각적 착각을 넘어서서 우리의 고정관념이 지닌 위험성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시킨다. 필자 또한 고정관념으로 인한 편협한 시각에 진실을 덮어둔 경우는 없었는지 자문자답해보았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