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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FOCUS

《굿-즈》에 엮는 몇 가지 생각들

글 백지홍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10월 14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굿-즈》(www.goods2015.com)는 새로웠다. 물론 소품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전시가 전에 없던 기획도 아니었고, 전시에 참여한 80인(팀)의 작가들도 전시를 열심히 보러 다닌 이라면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기획에 참여한 이들 역시 대부분 자신이 운영하는 전시공간이나, 자신이 기획한 전시를 통해 보아온 이였다. 전시가 새로웠던 것은 ‘예술가의 경제 문제’에 대해 참여 작가들이 끊임없이 토론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취향에 타협하는 전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동원에 성공하여 자신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았다. 작가들이 직면한 현실 문제를 꺼내놓으면서 기성 아트페어와 차별화를 꾀했다. 벼룩시장과 같은 분위기의 《굿-즈》에는 참여 작가들이 고민하여 제작한 ‘작품과 상품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상품(Goods)들이 전시되었다. 작가의 생존을 위한 시스템은 작동불능이고 믿을 만한 조언자도 없는 현실에서 작가들이 직접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줄타기를 시작했다. 각자가 제시한 해답은 다르지만,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담론이 오가는 풍요로운 전시가 되었다. 5일 간의 유쾌한 난장은 대한민국 현대미술판에서 느끼기 힘든 흥겨움이 넘치는 예외적 공간이 되었다. 약 6000명의 방문객이 《굿-즈》를 찾았으며, 총매출이 1억 3000만원에 달해 웃으며 마무리되는 보기 드문 전시로 기록되었다.

 

배경지식 : 절망편

굿즈의 기획자 33인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만든 신생 전시공간과 연관되어 있다. 아니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작가 대부분이 신생공간과 연관되어 있다. 재작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신생공간들이 운영자와 관계자들이 스스로를 불태우는 에너지를 동력삼아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는 신생공간은 중견공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각각의 공간들이 선보인 미학들은 충분히 정립되고 소개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고, 공간 운영에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한 이들은 공간을 유지하려 할수록 다방면에서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신생공간은 특정시기 미술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난 증상으로 끝날 것이다. 옆에서 지켜본 비평가는 말할 것이 생겨 기쁠 것이나, 참여한 작가와 기획자는 '노력'해서 신생공간의 경험을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 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이러한 문제는 신생공간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공간운영, 전시기획, 작품 제작에 필요한 재원이 안정적으로 수급되지 않는 한국 미술계는 항상 위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도 어떤 이들은 기존의 미술 시장을 경멸하는 동시에 비엔날레 등 대형 미술행사 등을 통해 대박을 기대하곤 한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초대형 작가가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으나, 그런 맥락에서는 신생공간을 비롯한 미술계의 모든 것이 대박을 위한 수단이 된다. 마치 엘리트 체육인 양성을 위해 존재하던 체육계와 유사하다. 한국 현대 미술계의 담론은 소소하게 작업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룬다. 작업을 통한 생존법은 대형작가가 되는 것 외엔 없으며, 미술계 내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확장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미술계에서 진행된 일은 진짜 미술의 범주를 조금씩 좁혀가는 것이었다. 정제된 말과 작업으로 진짜 미술을 말하며 미술계의 생산자의 범위뿐만 아니라, 수용자의 범위마저 줄인다. 미술의 참 된 수용자는 상호 참조적 메타예술이 되어버린 현대미술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며, 당연히 수용자의 그룹은 생산자와 겹친다. 생산자가 다른 생산자의 작품을 소비하는, 머리가 꼬리를 문 형태의 현대 미술계는 회전할수록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생존의지 : 문제를 찾고 방법을 모색하라

오랜 기간 공회전하던 미술계에 등장한 《굿-즈》는 단 5일간의 행사를 통해 현대미술 소비자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확대는 작가들의 지속가능한 작업을 위해 필수적이다. 예술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예술로 돈을 벌거나, 외부의 돈을 예술에 쏟아 붓거나. 전자인 직업이 작가인 경우는 예술을 하는 거의 모든 이가 꿈꾸는 길이지만, 그 확률이 낮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계속해서 ‘버티면서’ 자신의 성과를 보여야 될 수 있는 길이다. 이른바 금수저거나, 자신의 재능과 운에 모든 것을 걸고 한방의 도박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면, 계속 작업하며 버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실제 대부분의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작가라 말하지만, 수입은 다른 직업을 통해 얻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미술 강의나 주문 제작 활동 등 창작과 관련된 활동으로 수입을 얻는 넓은 의미의 ‘직업 작가’가 창작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보단 나을 것이다. 그리고 창작의 파생물을 판매하여 수입을 올리는 《굿-즈》는 이러한 넓은 의미의 직업 작가와 연결 되고, 좁은 의미의 직업작가와 연결되는 기획이었다. 《굿-즈》의 기획과정을 말하는 라운드 테이블 ‘굿-즈를 열며’에서 나온 발언들은 생존과 관련한 논의가 그동안 얼마나 배제 되어 왔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전시공간의 운영자거나 전시 기획자, 또는 일정기간 이상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인 이들에게서 “지금까지 판매에 대한 고민은 안해도 되었고, 안했었다.”, “작품을 사면 그것을 어딘가에 배치하고 계속 보게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니 신기한 일이었다.”와 같이 《굿-즈》 때문에 작품 판매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해봤다는 발언이 이어져 당황케 했다.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거나, 포트폴리오를 통해 기금을 받는 것도 일종의 판매 혹은 투자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젊은 작가, 기획자, 비평가에게는 통용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예상보다 훨씬 기초부터 시작한 논의가 전시에서는 상당히 완성된 형태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술과 돈의 관계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일을 보진 못했지만, 실무적인 분야에서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단순히 ‘내 작품이 판매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 작품을 판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 작가 중 한 명은 이번에 《굿-즈》에 참여하면서 작품 거래와 관련한 강의를 듣고, 처음으로 작품거래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일이 80명(팀)의 참여 작가에게 일어났다면 《굿-즈》는 그것만으로도 미술판매 시스템을 정착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굿-즈》란?

《굿-즈》라는 명칭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다소 부정적이었다. 상품 일반을 뜻하는 ‘Goods’를 ‘굿즈’라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흔히 ‘굿즈’는 애니메이션, 게임 혹은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캐릭터를 사용한 상품을 뜻하며 영어 Goods보다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콘서트장, 코믹월드, 야구장 등에서 ‘팬 층’이 사용하는 단어라는 맥락 역시 한글로 표기된 ‘굿즈’에 스며들었다. 반대로 이러한 팬 층의 소비 형태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굿즈’라는 표기는 매우 생소한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2014년부터 신생공간 ‘교역소’에서 진행된 작품 판매프로그램의 이름으로 '굿즈'가 처음 사용되었다. 교역소 프로그램은 캐릭터를 바탕으로 2차 창작물 ‘굿즈’를 판매하는 팬 층인 동인(同人)들의 전시의 패러디 성격을 띠었다. 차이점은 1차 창작자인 작가 자신이 다시 판매를 위한 창작물을 만든다는 점이었다. 교역소 프로그램보다 규모가 커진 《굿-즈》 참여 작가들의 ‘굿즈’에 대한 해석은 보다 다양했다. 작가 중에는 말 그대로 자신이 작품의 미니 버전 등 2차 창작물을 제작, 판매한 이도 있었으나, 기존 작품 중 비교적 판매가 용이한 소품을 가져온 이들도 있었다.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 경계가 희미했다. 진지하게 판매를 위한 고민을 하는 이, 이러한 판매 장터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승화 시키는 이까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굿-즈》’를 기존에 ‘굿즈’가 사용되는 맥락 안에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굿-즈》의 가장 큰 의의는 작가들에게 ‘굿즈’를 제작해서 팔게 한 것 자체에 있다. 작품 판매에 관한 담론이 빈곤을 넘어, 완전히 사라져버린 한국의 젊은 미술인 층에게 던져진 ‘굿즈’라는 단어는 파도와 같은 격한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나, 잔잔하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파장을 일으켰다. 그 결과 나타난 다양한 의견 중 가까스로 형성된 교집합이 ‘《굿-즈》’를 지탱하고 있었으나, 그 모습은 위태해보이기 보다는 화려한 가지를 뻗은 식물처럼 보였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매력

‘굿즈’, 즉 판매를 중심으로 뻗은 가지들은 넓은 지점에 닿아있었다. 이 점은 그동안 청년 작가들이 주축이 된 운동들이 특정한 미학적 입장을 전제함으로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사라진 것과 대비된다. 올해 초 젊은 작가들의 움직임인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은 ‘청년’이라는 용어를 운동 명에 넣었음에도, 세대를 대표하는 움직임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운동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생각하는 ‘청년’ 개념이 사전적 의미의 청년보다는 훨씬 좁다는 점이었다. 운동을 위해 모을 수 있는 청년의 수는 제한되었고, 거창한 이름에 비해 흐지부지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와 달리 서로 다른 미학적 입장을 견지하는 15개 전시 공간과 작가, 기획자 5인이 주축이 된 참여한 《굿-즈》는 처음부터 참여 작가들의 기준에 관한 명확한 미학적 경계를 그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벼룩시장과 같은 형태의 전시가 나타났다. 때문에 《굿-즈》라는 명칭에 예상하게 되는 동인전 느낌은 다소 흐려졌지만, 그만큼 관객들과 참여 작가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 했으며, 이러한 뒤섞임이 《굿-즈》만이 가진 매력이 되었다.

《굿-즈》 감상

자본주의라는 게임의 룰을 적용해본 《굿-즈》의 전시장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작가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졌으며 작품의 뒤에 있어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자가들과 만날 수 있었다. 직접 작품의 설명을 듣고, 통장의 잔고를 생각하게 되는 경험은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작가가 전시기간 동안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했는데, 이는 작가들에게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프리젠테이션하고 피드백 받는 기회가 되었다. 《굿-즈》라는 전시 형태에 부합하면서도 자신이 선보이고 싶은 작품을 제시할 방법을 강구한 점 역시 퍽 흥미로웠다. 밴드 혁오의 앨범 그림으로도 유명한 노상호 작가는 대형 캔버스 그림을 걸어놓고 관람객이 원하는 부분을 잘라서 크기에 따라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벽화작업을 주로 해온 이주리 작가도 유사하게 대형 나무 판넬 작업을 잘라 파는 것도 이와 유사했다. 많이 판매된 작품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스타일에 대해서도 참여 작가들은 다양한 의미의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판매전이다 보니 일러스트의 비중이 컸다는 점과 먼지를 파는 등 무용한 기념물이라 불릴만한 것들을 제작한 작가가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향후 청년 세대의 미학을 논할 때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였다. 《굿-즈》라는 전시명은 작가보다도 관람객에게 큰 힘을 발휘했다. 입장권을 구매한 유료관람객들은 더 많은 돈을 소비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시장에 들어왔다. 우리는 수많은 축제에 돈을 쓰고 만족을 얻으러 간다. 《굿-즈》는 현대 미술에도 그러한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 장의 티켓으로 반복 입장이 가능했다는 점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전시장을 둘러본 뒤 눈에 아른 거리는 것이 있으며 다시 찾아와 구매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시장을 여러 번 찾은 관람객도 적지 않았으며, 빈손으로 전시장을 떠나는 관람객은 찾기 힘들었다. 이번 전시를 보며 어쩌면 작가들에게 ‘팬’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지해주는 팬만큼 자본주의 시장에 부흥하면서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을까.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동료보다 팬의 존재가 중요할 수 있다.

기금의 효과적 활용 예시 : 《굿-즈》

《굿-즈》는 기금의 적절한 활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현재 다양한 기금은 적지 않은 규모의 창작 지원금 작가 단위로 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몇 가지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먼저 지원금을 주는 기준 문제로, 대체로 심사과정은 공개되지 않으며, 심사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특정 미학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지도 못한다. 두 번째 문제는 기금이 적절히 사용되었는지 평가 기준도 애매하다는 점이다. 1년 동안 작품을 준비하여 선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제대로 된 투자였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담론은 장막 아래에서 이뤄지며 현장에는 기금을 받았기에 이미 성공한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로 나뉜다. 그러나 이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생계비와 재료비를 위해 부업을 하느냐 마느냐 일뿐이다. 작가와 수용자 모두를 위해 정말로 필요한 토론의 장은 드물다. 기획자들은 사비를 털어가며 전시를 기획하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사라져갔다. 미술비평은 생존을 위해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잔기술이 되었다. 기금을 바라는 작가 지망생은 많고, 자신의 기획을 꿈꾸는 기획자는 소수이며, 이득 볼 것이 없는 비평가는 사라진 것이 한국 미술계의 현실이다. 기금이 한국 미술계의 선순환을 위한 연료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한 해결책이 있다. 작가들이 아니라 전시 기획과 비평을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굿-즈》와 같은 전시는 소수의 작가를 지원할 비용으로 기획되지만, 그 파장은 작가 단위 지원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이러한 기획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만들고, 당연히 기금이 적절히 사용되었는지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굿-즈》 이후

《굿-즈》로 귀결된 담론과 《굿-즈》가 불러올 담론은 폭넓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굿-즈》는 한국 미술사에, 적어도 청년작가들이 주축이 된 무언가로서는 2000년대 이후 가장 의미 있었던 전시로 기록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향후에는 기금 없이도 진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너무 멀리 간 욕심일 수 있지만, 기금 없어도 순환되는 현대미술시장을 만든다면 《굿-즈》의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예술관에 따라서는 ‘판매’가 핵심 개념이었던 굿즈의 기획에 반대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굿-즈》와 관련된 의견은 다양하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굿-즈》가 뛰어난 점이다. 외연을 확대하여 논의가 계속될 수 있을 만큼의 담론 생산자들을 수용했으며, 그 덕분에 《굿-즈》의 파장은 이미 합의된 미학적 견해를 가진 이들만의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판매를 목적으로 한 것에 부합하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점은, 참여 작가들의 긍정적 반응이 단순히 정신 승리에 그치지 않고, 차기 작업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 성과가 있기에 《굿-즈》의 담론은 허공에 뜨지 않고 현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아쉽게도 《굿-즈》의 대표 돈선필은 좌담회에서 “《굿-즈 2016》은 없다. 우리는 5일 동안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가 보여준 에너지는 재현 불가할 것임을 생각할 때 납득이 가는 말이지만, 나는 다음 《굿-즈》를 기대한다. 홍익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작가들로 다소 치우쳤던 작가 군이 변화한 모습도 보고 싶으며, 소문을 들은 이들이 이번에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 체감했으면 한다. 정기전 형식을 띠거나 아예 상설플랫폼이 된다면 폭발적 에너지는 줄어들겠으나, 새로운 시선의 생산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참여 작가들과 방문객 중 다음에는 더 잘 만들고, 더 잘 살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무엇을 해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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