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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FOCUS

《OUT OF THE BOX :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

글 장서윤

21세기적 수정궁

글|장서윤 객원기자 이미지제공|금호미술관

 

《OUT OF THE BOX :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 2015.09.18.~12.13./금호미술관

 

1851년 제1회 영국 만국박람회에는 근대 산업혁명의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새로운 문물들로 별천지를 이룬 거대한 행사였다. 그 중에서도 주 전시관이었던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의 수정궁(Crystal Palace)은 철과 유리라는 신 재료와 새로운 공법을 이용하여 기존 건축에 대한 개념을 뒤집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였다. 외부의 빛은 건축물의 외피인 유리를 통해 내부 공간을 가득 채움으로써 바깥과 안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표준화된 형태의 유리와 철골의 반복은 끝없는 발전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반영하는 듯 보였다. 근대 건축은 이처럼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과 함께 시작되었다.

 

더_시스템 랩, 〈Steel Igloo〉, 스테인레스 스틸 패널 177장

 

유토피아(utopia)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두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장소이다. 따라서 실제적인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단어 그 자체에서 드러나듯 ‘topos’, 즉 장소성을 포함하는 개념인 것이다. 유토피아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상국으로 묘사하고 있는 만큼 역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1516년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발표한 『유토피아(Utopia)』를 통해 보다 근대적인 개념의 유토피아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 토마스 모어가 묘사하는 ‘유토피아 섬’은 일한 만큼 소유하고 사유재산이 부정되는 평등한 사회이자, 정치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이상국이다. 이렇게만 살펴보면 유토피아가 자칫 개념적이고 의미론적인 차원으로 환원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어는 마치 이러한 유토피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유토피아 섬의 지도를 삽화로 수록하였다. 구체적인 위치와 형태 그리고 도시의 설계가 자세히 그려진 이 삽화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국으로서의 유토피아 섬에 물리적 장소성을 부여해준다.

그렇다면 21세기의 건축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유토피아적 열망은 지속되고 있을까? 만약 지속되고 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21세기적 유토피아는 진행되고 있을까? 실로 질문은 거창한 듯 보이지만 지금 이 시대에 와서 근대적 유토피아의 개념을 재 상기시키고 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 동시대 미술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이러한 유토피아적 열망을 뒤로 한 채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층위에서 실천하고 있을 때 건축은 디자인과 조형성은 물론 그것의 지속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반영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래지향적 이상을 담보로 한다. 따라서 유토피아의 흔적을 동시대 건축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네임리스건축, 〈Between Heaviness and Lightness(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전벽돌 140장, 유리벽돌 80장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OUT OF THE BOX: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는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동안 많은 건축 관련 전시들이 전시장 내 건축을 설치할 수 없다는 물리적 조건으로 인해 건축물의 사진이나 도면과 같은 아카이브 자료에 의존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역시 건축 전시의 방향을 한 단계 발전시킨 형식이기도 하다. 건축 자체가 미술의 맥락에서 전시 될 때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들을 동시대 미술에서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아카이브적 형태를 통해 건축의 이념과 구조, 형태를 가시화 시킨 것은 나름 건축 전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축 그 자체를 전시장 내에서 몸소 경험할 수 없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던 시점에서 《OUT OF THE BOX: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는 건축 그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우선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전시의 주 소재는 바로 재료이다. 한국말로 ‘의’는 보통 소유격으로 명시되지만 영어의 ‘of’는 소유격이자 동격의 의미 또한 가진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는 결국 건축과 재료가 동일시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재료는 건축이자 건축 역시 재료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재료를 건축의 차원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수정궁’으로 되돌아 가보자. 기존 건물을 이루는 재료가 돌과 나무 같은 자연물이었던 것이, 근대 산업 혁명과 대량 생산의 기술 발전을 통해 유리와 철골과 같은 산업 재료들이 건축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공간을 경험하는 인간의 인지 방식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유리를 외피로 사용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공간은 동시에 경험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인식 또한 근대적 시각으로 변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재료는 건축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가능한 구조와 변형은 재료의 성질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은 해석에 따르면 결국 재료는 건축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자 건축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인간의 인지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건축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와이즈건축, 〈Structure of Strips(띠의 구조)〉, 대나무살, 광목, 금속앵글, 와이어

 

하지만 건축에 있어 재료가 중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건축 전시에서 가장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설치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6팀의 설치는 재료와 건축의 유기적 연관 속에서 관람객의 경험을 충족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 철과 유리 같은 일반적인 건축 재료에서부터 위약해 보이는 종이, 지붕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플라스틱 골함석 그리고 새로운 유리벽돌과 3D 프린트 기술까지, 현존하고 있는 재료와 미래의 재료, 현실적인 재료와 실현되지 않은 재료들은 6팀에 의해 설치 작업이자 실제 구축을 위한 일종의 프로토타입으로 전시 공간에 실현된 것이다.

미술관의 1층은 유일하게 자연적인 햇빛이 들어오고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오픈 공간이라 할 수 있다. 1층이면서도 반 층이 낮은 이 공간은 와이즈건축의 〈띠의 구조〉가 들어섰다. 일반적으로 부재로만 쓰이는 대나무를 구조 전체로 사용함으로써 건축 재료로서의 대나무의 가능성을 탐구한 작업이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대나무를 건축 전체에 사용하는 것이 낯설기도 한 방식인데, 공간을 꽉 차게 들어온 커다란 구조물은 탄성적인 대나무의 특징으로 인해 공간에 긴장감을 부여해 주기도 하지만 나무의 향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마치 정자(亭子)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은 공감각적 감상을 제공한다. 또한 대나무의 선적인 패턴과 반복은 구조물에 조형성을 더함으로써 건축의 재료로써 대나무가 가진 가능성을 충분히 살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조호건축, 〈Waffle Valley〉, 종이 400장

낯선 재료는 조호건축의 〈Waffle Vallery〉에서도 계속 된다. 심지어 가볍고 얇아서 위약하기까지 한 종이는 전시장 한복판을 차지하면서 거대한 밸리를 이루었다. 하나의 구조가 되기 위해 종이는 벌집 형태가 되어야 했다. 낱장으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이 벌집의 격자 구조를 이루면서 강도와 조형성을 얻게 된 것이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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