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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 별세

글 김정아

한국 화단의 대표적인 작가 천경자(千鏡子, 1924‒2016) 화백이 별세했다. 국립현대미술관〈미인도〉 위작으로 절필선언을 한 천 화백은 이후 미국으로 떠났으며, 1998년 일시 귀국하여 1990년대까지 60여 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바 있다. 미국 맨해튼에서 지내온 것으로 알려진 천 화백은 뇌출혈로 쓰러진 뒤 두문불출하였고 국내 미술계와 수 년 간 연락이 두절되면서 생사여부에 논란이 있어 왔다. 한 매체가 이미 두 달 전에 천 화백이 향년 91세 나이로 사망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사망 사실이 알려졌다.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천 화백이 2015년 8월 6일 사망했음을 알려 그녀가 별세했음을 실감하게 했다.

〈미인도〉위작 논란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 화백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직접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그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려 끝나는 듯했지만, 1999년 고서화 위작으로 구속된 A 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재연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 반면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절필을 선언했다.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사실을 국내에 알린 천 화백의 딸 이혜선(70·섬유디자이너) 씨는 25일 한 언론사에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소위 ‘미인도’라는 그림을 그린 바가 없음을 재확인합니다.” 라고 쓴 서신을 보내왔다. 또한 이씨는 자신과 어머니가 그동안 미인도 위작 사건, 서울시에 작품 기증을 한 이후 수차례 전시실 개폐 시도, 서울시의회에서의 애물단지 발언, 사실이 아닌 언론보도, 서울 영등포 여성회관(도서관)으로의 작품 이동, 최근 생존 의혹 보도 등 여러 가지로 고통을 받았으나, 더 이상 그 어떤 고통 없이 어머니가 편히 쉬시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어 온 천 화백은 그간 독보적인 채색인물화를 선보여 왔다. 그녀는 1998년 시민과 후학들이 자신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도록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60여 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 2014년 8월‚ 그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93점의 작품 중 최근 몇 년간 미공개되었던 작품 30여 점을 상설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는 꿈과 사랑, 환상에서 비롯된 정한(情恨) 어린 스스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작품에 투영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은유한다.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거나 동식물로 표현되거나 상관없이, 그림은 나의 분신”이라고 말하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 세계는 마치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전시는 이처럼 자전적(自傳的)인 성격을 가지는 작가의 작품 전반에 대한 자기 고백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 ‘환상의 드라마’, ‘드로잉’, ‘자유로운 여자’라는 네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천 화백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감상함으로써 고인의 작품 이 지닌 참뜻이 다시 한 번 빛나길 바라며, 앞으로 지속적 연구를 통해 고인의 업적과 위상이 다각도로 재조명되길 기대해 본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상설 전시실에 마련된 헌화 장소에는 꽃다발과 편지 등이 놓여 그의 마지막 길을 위로하고 있다.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계에 길이 남을 예술가,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화백의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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