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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다

글 김정아

박광수 작가 ⓒ김흥규개관이래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온 금호 미술관은 2004년 제1회 공모를 시작으로 신진작가 공모전인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월 8일부터 2월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2016 금호영아티스트》 전시는 2015년 제14회 공모에 선정된 4명의 작가의 개인전 형식을 띠는데, 이중 드로잉을 근간으로 애니메이션 영상, 입체작업에 이르기까지 드로잉을 다양한 범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박광수 작가를 만나보았다. 그는 ‘선을 긋는’ 반복적인 행위 자체가 전달하는 입체적 감각의 드로잉 작품들을 통해 일상과 무의식의 교차를 독특한 내러티브로 엮어낸다. 지난 1월 13일 금호미술관 2층 전시장에서 진행된 본 인터뷰는, 이번 전시 《좀 더 어두운 숲(A Bit More Darker Forest)》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작품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마치 검은 숲이 걷히고 텅 빈 캔버스만 남은 듯,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전시 제목이 《좀 더 어두운 숲》입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어두 운 숲’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숲이란 이미지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 혹은 동기 부여가 되었던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제가 밤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집 근처에 숲이라고 하 기엔 작지만 일반적인 공원이라고 하기엔 나무가 많은 곳이 있어요. 산책을 하다 보니 숲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흥미로운 생각 들을 가지게 되었고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펜으로만 그림을 그렸는데,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되는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 했어요. 그러던 중 그림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우리가 신체적으로 가까이 가면 더 자세히, 크게 볼 수 있는 원리를 생각해 봤을 때, 저는 제 신체가 움직이지 않고서도 작품 자체의 크기가 커졌을 때 관람자의 입장에서 어떤 시각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2012년경인데요, 작품 크기를 키우기 위해 붓을 써보려고 했 지만, 펜으로만 그려오던 저로서는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의 정서를 잘 구현해 보고자 손수 제작한 수제 펜을 사용 하게 되었어요. 나무젓가락에 다양한 크기의 스펀지를 부착시킨 붓이에요. 보셔서 알겠지만 제 그림은 면이 아니라 점이나 선으로 이루어지는데, 손의 즉흥적인 감각을 이용한 선으로 만들어 진 공간을 생각하다 보니 숲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던 거죠. 다시 말해 제가 만들어낸 도구로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장소가 숲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그리다 보니, 숲을 그리고 있다기보다 어떤 직선과 곡선의 막대들을 캔버스 안에 배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졌어요.

〈검은 숲 속〉,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각 100x73cm, 2015, 금호미술관 설치전경그 배열하는 느낌은 아무래도 작가님이 만든 수제 펜이라는 도구와 그 도구가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법칙 같은 것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도구가 손에 익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네.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했는데 오히려 날 것 같은 느낌들이 있었어요. 그냥 나무막대 같고, 각목 같은 선의 형상들이요. 그런 이미지들이 캔버스를 채워나가면서 제가 구현해내고자 했던 딱딱한 느낌의 선의 정서가 부각되었던 거 같아요.

사실 저도 캡션을 보지 않았더라면 판화라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정도로 음각이 주는 특유의 투박한 느낌이 전해졌어요. 그게 작가님이 말씀하신 선의 정서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 전시되어 있는 작품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하고 계시는 다른 작업에도 그 수제 펜을 사용하시나요?

네. 수제 펜과 더불어 일반 펜으로도 그리고 있고요. 요즘에는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가장 부합되기 때문에 즐겨 사용하지만, 재료에 제한을 두진 않으려고 합니다.

컬러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의도적인 것은 아닌데요, 제 작품에서 어떤 형태나 이야기에 비중이 있고, 그런 것에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색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작가의 비전을 갖게 된 시기가 군대에 있을 때인데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짬짬이 스케치를 할 때 사용 했던 게 아무래도 종이와 펜뿐이었고, 그 누적된 시간들이 이후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작가 노트를 보니 ‘틈’이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틈’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아주 사소한 것이 낯설게 관찰되는 상황에 주목하게 되요. 가령 돌의 단면이 인위적으로 날카롭게 잘라져 있다든지 하는 거요. 그런 상황이 발견되면 노트에 기록을 하고 드로잉으로 발전시켜요. ‘틈’이라는 것은 살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인데 그 사이에 어긋나있는 ‘틈’들로 인해 관찰되는것들이 제 작품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 ‘틈’은 어찌 보면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죠. 하지만 저의 상상은 또 굉장히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틈’은 작업을 시작할 때 발견하게 되는 어떤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 전시와는 다르게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작품들로만 구성이 되어있는데 의도적인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대상을 그릴 때 정확히 한 번에 그려낼 순 없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해서 틀린 부분을 수용해가면서 그려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확한 형태를 구현해 내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리다 보니 캔버스 안에 여러 가지 실수라고 생각되는 선들을 수습해 나가는 과정들이 곧 그림이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용감해졌어요. 또 제 그림에는 밑그림이 없거든요. 그래서 틀린 것들 까지도 포용하게 되면서 대상 자체에 여러 선들이 중첩되는 과정이 어떤 진동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더듬어 가며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잘못된 부분을 내버려 두고, 그 안으로 또 다른 선들을 그려나가면서 어떠한 형태를 만들어가는 거죠.

전시 전경작가님 작품 속에서 선의 역할은 그것을 하나의 어휘로 보았을 때, 마치 내러티브를 창조하기 위한 스크립트로 기능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을 연상시키기도 하고요.

저는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단어나 상황에 대한 단상을 적는데요, 그중 한 꼭지를 떼어내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어찌 보면 머릿속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아니라 수집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죠. 말씀하신 것처럼 선의 역할 자체가 내러티브를 포함하고 있는 셈인데요, 전시장 초입에 있는 〈표본 채집〉이란 작품은 전시 전체에 대한 은유입니다. 선은 어떤 보이는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어요. 즉 숲을 이루는 나뭇가지가 되기도 하고, 그 뒤에 느껴지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제 그림에서 선은 여러가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됩니다. 마치 선의 모노드라마 같다고 할까요.

네. 그 선을 통해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들이 동시에 발현 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다른 작 품들은 모두 숲이 배경인데, <표본 채집>은 맥락이 다르게 느껴져 서 가장 궁금했던 작품이었어요.

네. 가까이에서 보시면 선으로 다리만 대충 그려진 곤충도 있고, 자세하게 묘사되거나 기하학적인 모양의 곤충들도 보이는데요, 이렇게 여러 형태들의 곤충들을 모아 표본 채집을 하는 과정 자체가 제 그림의 표현 수단인 선이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크기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초반에 했었는데, 그것과도 같은 맥락이에요. 멀리서 보았을 때, 작게 보이고 가까이 보았을 때 크게 보이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제 관심을 가장 잘 구현해 낼 수 있는 게 곤충이었어요. 작은 점 같은 이물질이 자세히 보니 벌레였던 일상적인 경험은 누구나 겪어봤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곤충이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되요. 작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디테일하고. 향후 시리즈로 제작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선들이 끊어지거나 이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지워지고 사라지는 형태들이 가시화되는 느낌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달에 보았던 윌리엄 켄트리지의 목탄 드로잉 작품이 환기되었습니다. 지우지 않고 덧그리는 방식이 주는 아날로그적이고 수공적인 프로세스가 닮아있다고 생각되었거든요.

네. 또 그 드로잉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로도 확장되니까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그림에서는 실수라고 보이는 선들을 다 수용하다 보니 인물이 자연스럽게 풍경에 스며들기도 합니다.

네. 바로 그런 부분이 <숲에서 사라진 남자> 연작에서 발견됩니다. 사실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어요. 여기 제가 궁금해 하는 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데요, 그를 둘러싼 환경 그러니까 숲이 그를 에워싸는 듯하면서도 삼켜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인물과 환경의 경계나 그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이 모든 건 선의 효과인 셈인데요,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형식인 분할 화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각 면들이 해체되었다가 재구성되기도 하는 30점의 연작에서 묘한 서스펜스가 느껴졌어요.

제가 사라지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 전 개인적인 경험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육체적인 것이 사라지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거죠. 사라짐을 어떻게 하면 잘 구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밤에 산책 하면서 자주 했어요. 그곳에서 누군가가 사라졌다 나타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서 숲 안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해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화면을 분할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은 만화의 프레임을 차용한 것이고요. 그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는 어떤 존재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박광수, 〈숲에서 사라진 남자〉, 종이에 잉크, 42cmx29.7cm, 2015 사진제공: 금호미술관저는 그 남자가 작가님의 도플갱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창작의 고통이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예술가의 나이브 한 면모, 또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덧없음 같은 거요. <숲에서 사라진 남자>는 이렇게 자유로운 상상을 유도함으로써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품 같아요. 또한 드로잉의 선들은 마치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과 비슷한 맥락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네.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맞아 떨어졌던 거 같아요. 선적인 요소 와 숲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제가 그 공간에서 관찰한 것들이 이 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까지가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계속해서 드러나지만, 그 사라진 지점의 허공에는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말 신한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볼 수 있었고,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사라짐’이라는 주제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어떻게 변주되고 확장되 어갈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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