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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천국보다 낯선

글 김정아

《레섹 스쿠르스키 전》/2015.12.18~2016.1.31/갤러리JJ

레섹 스쿠르스키, 〈Stranger than Paradise 2〉, 캔버스에 아크릴, 100×160cm, 2014

여기 평범한 하얀 캔버스가 있다. 순백색의 정제된 화면에서 작고 검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림은 마침내 이야기를 드러낸다. 희뿌연 물감 혹은 빛의 겹겹의 레이어를 뚫고 나타난 듯한 분명치 않은 형상들은 마치 꿈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군데 군데 얼룩진 평면에서 출몰한 그 두세명의 존재들은 어딘지 모르게 고독한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작가 레섹 스쿠르스키의 회화 16점을 아우르는 전시 제목은 《천국보다 낯선》. 나는 전시 제목과 동명인 작품 한 점 〈Stranger than Paradise 2〉(2014)를 보기 위해 한파를 헤치고 발길이 뜸한 동네에 위치한 갤러리를 찾았다. ‘천국보다 낯선’은 예상대로 짐 자무쉬(Jim Jarmusch)의 1984년 작 동명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레섹 스쿠르스키의 16점의 회화 한 점 한 점이 영화의 스틸컷처럼 느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화이트 큐브 속 (*심지어 갤러리 외관 벽돌 색상도 화이트였다) 화이트의 미장센이 주는 이중적 효과는 스쿠르스키의 회화와 자무쉬의 영화가 만들어내는 느린 몽타주의 체험을 배가시켰다. 침묵이 응축된 시간 속에서 이미지들은 무심히 정지되어 있는 듯하지만, 그 침묵이 공명하는 가운데 움직임을 얻게 되는 것은 회화에서 영화로의 이행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자무쉬의 영화는 암전으로 분리된 총 67개의 플랑 세캉스(plan-sequence: 하나의 쇼트가 하나의 씬을 이루는 것)로서 암전은 마치 연극의 막을 상기시킨다. 암전의 반복은 시간 경과의 의미도 부여하지만, 암전되기 전의 씬의 이미지들이 관객의 기억 속에 잠시 머무르게 하는 기능도 한다. 그 암전의 간극이 주는 효과는 스쿠르스키의 회화 속에서도 구현된다. 화이트 인(white in) 형식을 환기시키며 서서히 드러나는 캔버스 속 내러티브는 일상의 삶에서 벗어난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주며,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작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천국이라면, 작가는 그 천국보다 ‘낯선’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화면에서 인물의 실루엣들은 한 곳에 집중되고 배경은 지워지거나 생략됨으로써 의도된 미장센을 구축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약간의 암시를 통해 그곳이 해변 혹은 거리, 공원, 공터 등을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정보가 제거된 화이트의 보이드(void) 속 작은 인물들이 벌이는 사소한 행동들이 더욱 잘 보이고 그 고요함마저 감지되는 것이다. 신세계(미국)를 향해 방랑하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자무쉬의 영화 속 배경 또한 정지된 카메라의 광각렌즈와 롱 쇼트로 미니멀하게 표현된다. 롱 테이크 속 잘려나간 구도나 검은 창으로 바깥 풍경을 차단시키는 등의 설정은 시공간 개념의 분절과 인물들의 고독한 모습을 부각시킨다. 로드무비처럼 세상을 누비는 자유를 가졌지만, 세상 그 어디에서도 이방인에 불과한 존재로 그려지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스쿠르스키 회화 속 인물들을 닮았다. 미미하게 보이는 그들은 자연의 황량함과 도시의 우울함이라는 이중 기류 속에서 자유를 획득한 존재들로 느껴졌다. 비록 공간은 부재하지만, 그들만의 공간을 찾아 떠도는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 〈Stranger than Paradise 2〉 작품 앞에 서서 영화 속 다음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세 사람의 뒷모습과 대비되는 온통 하얀 색의 얼어붙은 호수의 풍경. 그 절제된 영상미 속에서 “온통 눈이군”이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Beautiful”이라고 응답하던 여자의 역설적인 조크도 생각났다. 이로써 눈이 오지 않는 한겨울에 불현듯 화이트 색상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에 도취되고자 했던 나의 얄궂은 욕망은 어느 정도 실현된 셈이다. 전시장을 나오니 귓속을 맴돌던 눈보라 소리는 그쳤고, 가로등 불빛은 암전을 걷어냈다. 그렇게 ‘천국보다 낯선’ 시간은 끝이 났다.

레섹 스쿠르스키, 〈Sonnenschutz〉, 캔버스에 유채, 60×100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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