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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혐오의 풍경에서 두 걸음 물러서기

글 유지원

이수경 개인전: F/W 16/ 5.26–6.26/ 케이크 갤러리
《F/W 16》 설치 전경

흰색 아크릴의 매끄러운 층계 진열대. 그 위에 놓인 것은 재래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색 파카, 검정색 가짜 가죽, 뻣뻣한 모조 라쿤털 뭉치, 옅은 갈색의 골덴 패브릭과 싸구려 장신구. 눈에 익은 패턴과 질감임에 틀림없지만 낯설게 비틀려있다. 진열대와 사각발 바디 마네킹을 보고 있노라면 편집샵에 와있는 것도 같다가, 진열된 엉뚱하거나 기이한 꼴들을 만나면 멈칫하게 된다. 이러한 광경은 작가가 남성-노인들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서울의 혐오스러운 일상들을 맥락이나 서사와 관련 없이 ‘크롭’하고 ‘캡처’한 후, 이를 패션의 문법으로 풀어낸 과정을 풀어 놓은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전시가 구성되기까지는 두 단계의 전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남성-노인이 일상적으로 구현하는 장면들로부터 표면만 가져와 신상품의 모티프로 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패션 산업의 디자인 및 유통 메커니즘을 미술 전시의 맥락으로 끌어오는 것. 이와 같은 두 단계의 전유를 통해 작가는 1차적인 접촉, 즉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서울의 풍경으로부터 두 단계로 거리를 만든다. 이러한 간격-만들기의 실천에서 보이는 태도는 어떤 것인가? 이 간격은 어떤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

남성-노인이 구성하는 풍경을 패션 제안으로 전유한 첫 번째 단계의 이행을 살펴보자. 속사정은 두고 ‘겉’만 가져오는 선택은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특정 문화나 집단을 모티프로 삼되 고유한 맥락과 의미는 씻어내고 표면만 끌어오는 패션 산업의 속보이는 전략을 상기시키니 말이다. 패션브랜드의 차용 전략은 특정 집단-많은 경우 ‘이국적’이거나 ‘낯선’ 소수자의 집단-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채 이들을 타자화시킨다는 평가를 거듭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F/W 16》은 주제로 삼은 서울의 남성-노인과 서울 풍경의 맥락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동일한 불편함을 유발하는가? 이수경이 손수 생산해낸 아이템들은 타자를 둘러싼 맥락에 무심하지만 오히려 야릇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쾌감의 출처는 아마도 감각적으로 익숙한 재료들이 낯선 형태로 탈바꿈하면서 발생한 어떤 거리일 것이다. 익숙한 돕바에 모조 가죽으로 된 벙어리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온다거나, 속에 있어야 할 솜이 동그랗게 묶인 평범한 잠바 위로 마중 나와 있다. 나아가 핫핑크 미니쿠션 〈산도(Sando)〉 같은 꼴들은 어떤 타자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거나 모티프가 된 장면의 내력을 파고들지도 않는다. 이 덩어리들은 폭력적인 타자화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어떤 장면들 앞에서 성급히 내려지려는 규정들을 지연시킨다. 거리끼는 풍경과 즉각적인 반응 사이에 간격이 발생한다. 멈춰 서서 오리고, 붙이고, 기워내고, 망설인다.

그 다음 단계의 전유는 패션 디자인과 유통에서 미술 전시의 문법으로 일어난다. 전시장의 풍경은 브랜드 스토어와 갤러리 공간 사이에 걸려 있다. 전자로 보자면 공간 안에 놓인 작업들은 구매 및 착용 가능한 상품들이다. 후자로 본다면 이 모든 아이템들은 손대서는 안 될 작품들이 된다. 물론 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작업들의 명백한 무용성을 볼 때, 이 긴장은 팽팽하기보다는 후자에 더 기울어있다. 하지만 이 공간은 분명 브랜드 스토어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효과에 기대고 있다. 이 사물들 앞에 선 관객은 미술작품 앞에서 “무슨 의미가 숨겨져 있는가?”를 물으려다가도 손님마냥 선뜻 “이 아이템들이 내 맘에 드는가?”를 따져보게 된다. 불필요한 엄숙함과 진지함은 휘발되고 눈앞에 제시된 꼴들에 집중한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빵모자를 쌓아 올린 〈돌〉과 〈빵〉, 그리고 폭신폭신한 〈떡〉과 같이 엉뚱하게 예쁜 것들이다. 이 오브제들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창밖의 황학동 풍경과 두 단계의 여정을 거친 꼴들을 함께 보면, 어떤 기시감과 거리감이 끼어든다. 앞서 언급한 전유가 모티프가 된 서울 풍경과 이에 대한 손쉬운 반응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다면, 두 번째 전유는 이 간격을 더 벌려놓는다. 혐오할만한 풍경은 나름 귀엽고 보들보들하면서도 이질적인 것이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두 차례의 전유와 이로 인해 발생한 간격들이 문제의 ‘핵심’ 혹은 ‘본질’을 변질시키거나 망각하게 한다고 판단한다면, 《F/W 16》은 발랄한 실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처한 상황들 앞에서 쉽게-이해하기와 납득의 말-남발하기 대신 풍경-응시하기, 꼴-만들기, 그리고 간격-벌리기를 혐오를 소화하는 데에 유효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수경이 구성한 믹스 앤 매치 오브제들이 혐오로 달려가는 감각들 사이사이에서 과속방지턱 같은 것들이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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